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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란지위(累卵之危)累:여러 포갤 루. 卵:알 란. 之:갈 지(…의). 危:위태할 위.알을 쌓아(포개) 놓은 것처럼 위태로운 형세의 비유. 전국시대, 세 치의 혀[舌] 하나로 제후를 찾아 유세하는 세객(說客)들은 거의 모두책사(策士) 모사(謀士)였는데, 그 중에서도 여러 나라를 종횡으로 합쳐서 경륜하려던책사 모사를 종횡가(縱橫家)라고 일컬었다.위(魏)나라의 한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난 범저(范雎)도 종횡가를 지향하는 사람이었으나이름도 연줄도 없는 그에게 그런 기회가 쉽사리 잡힐 리 없었다. 그래서 우선 제(齊)나라에사신으로 가는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의 종자(從者)가 되어 그를 수행했다.그런데 제나라에서 수가보다 범저의 인기가 더 좋았다. 그래서 기분이 몹시 상한 수가는귀국 즉시 재상에게 '범저는 제나라와 내통하고 있다'고 참언(讒言)했다. 범저는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거적에 말려 변소에 버려졌다. 그러나 그는 모사답게옥졸을 설득, 탈옥한 뒤 후원자인 정안평(鄭安平)의 집에 은거하며 이름을 장록(張祿)이라바꾸었다. 그리고 망명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중 때마침 진(秦)나라에서 사신이 왔다.정안평은 숙소로 은밀히 사신 왕계(王稽)를 찾아가 장록을 추천했다.어렵사리 장록을 진나라에 데려온 왕계는 소양왕(昭襄王)에게 이렇게 소개했다."전하, 위나라의 장록 선생은 천하의 외교가 이옵니다. 선생은 진나라의 정치를 평하여'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累卵之危]'며 선생을 기용하면 국태민안(國泰民安)할것이라고 하였사옵니다."소양왕은 이 불손한 손님을 당장 내치고 싶었지만 인재가 아쉬운 전국 시대이므로,일단 그를 말석에 앉혔다. 그 후 범저(장록)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으로그의 진가를 발휘했다.
    daet24 2026-08-24 故事 / 成語
  • 老生常譚(노생상담)老:늙을 로, 生:날(서생) 생, 常:항상 상, 譚:이야기할 담늙은 서생이 하는 이야기. 새롭고 독특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언제나 똑같은 상투적인 이야기를 할 때 사용함 조조가 통치하는 위(魏)나라에 관로(管輅)라는 사람이 있었다.그는 어려서부터 보통 평범한 아이들과는 달리 천문학에 남다른 관심과 지식을 보였다.친구들과 놀 때도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그리는 데 열중하였다.그는 자라서 사람들의 운명을 점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다.어느 날 당시 이부상서(吏部尙書)로 있던 하안(何晏)이 관로에게 점을 치러 왔다."내가 장차 삼공이 될 수 있는지 좀 봐주시오.요즘 파란 파리 열마리가 내 코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꿈을 꾸었는데그 꿈도 좀 해몽해 주구려.""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옛날 주(周)의 성왕(成王)을 보필하던 주공(周公)은직무 때문에 밤을 세우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로 인해 성왕이 나라를 일으킬 수 있었고다른 제후들도 그를 추앙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도리를 따르고 지켰기 때문이지,점을 치거나 액막이를 해서가 아닙니다. 당신은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덕행이 부족하여위세를 부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상서를 보면 코는 하늘 가운데 있습니다.그런데 파란파리가 얼굴에 달라붙는 것은 위험한 징조입니다.당신이 위로는 문왕(文王)을 좇고 아래로는 공자를 생각하면 청파리도 쫓을 수 있습니다."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등양(鄧暘)이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얘기요. 나는 노생(老生)의말을 너무 많이 들어 신물이 났소.뭐 특별한 게 있소?"관로는 아무 말도 못했다.날만 새면 어제의 지식은 낡은 것이 되어 버리는 오늘날,새롭고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老生常譚'만 하면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하기어려울 뿐 아니라 퇴보하기 쉽다.
    daet24 2026-08-24 故事 / 成語
  • 論功行賞(논공행상)論:의논할 론, 功:공 공, 行:행할 행, 賞:상줄 상공적이 많고 적음에 따라 알맞은 상을 내림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세운 데에는 개국공신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그래서 後에 그는 공적(功績)의 많고 적음에 따라 깍듯이 예우해 주었다. 論功行賞인 것이다.중국의 경우 대표적인 論功行賞하면 주(周)나라를 꼽을 수있다. 낚시꾼 출신인 강태공(姜太公)의 도움이 결정적이었으므로 무왕(武王)은 그를 제(齊)에 봉했다.또 많은 공신과 왕족을 제후(諸侯)에 봉함으로써 주는 봉건제도(封建制度)를 실시하게 된다.도움을 준 이상 그 對價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인지도 모른다.따라서 응분의 보상이 없다면 실망·분노가 생길 수도 있다.항우(項羽)는 진(秦)을 멸망시킨 후 論功行賞이 공평하지 못했다.총 18王을 봉했지만 불만을 품지 않은 者가 없었다.그중 가장 불만이 많았던 者가 유방(劉邦)이었다.결국 項羽를 타도하고 한(漢)을 세우니 잘못된 論功行賞으로 왕조가 바뀐 예다.   또 당태종(唐太宗·李世民)은 아버지 이연(李淵·唐高祖)을 도와 수(隋)를 무너뜨리고唐을 세우는데 가장 혁혁한 功을 세운 이다.하지만 둘째 아들이었으므로 高祖는 왕위를 큰 아들 이건성(李建成)에게 물려 주고자 했다.극도의 불만을 느낀 그는 마침내 변을 일으켜(玄武門의 變) 형을 죽이고아버지를 협박해 왕위를 물려 받았다.論功行賞은 공정·합당해야 함을 일깨워 준다.
    daet24 2026-08-24 故事 / 成語
  • 勞而無功(노이무공)일할 노, 말이을 이, 없을 무, 공 공애는 썼으나 애를 쓴 보람이 없음. 수고만 하고 아무런 공이 없음  공자(孔子)가 노(魯)나라에서 서쪽에 있는 위(衛)나라로 떠나기에 앞서수제자 안연(顔淵)이 사금(師金)이란 벼슬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우리 선생님의 이번 여행길은 어떻겠습니까?"사금은 이랬다."안타까운 일이지만 당신 선생은 아마 이번에 욕을 보실 겁니다.""어째서 그렇습니까?"다그쳐 묻는 안연에게 사금은 이렇게 말했다."당신 선생은 전에도 여러 나라에서 곤욕을 치렀지요.송(宋)나라에서는 나무 그늘 밑에서 강론을 하다가 베어진 나무에 깔릴 뻔했고위나라에서는 쫓겨나기도 했으며, 진(陳)나라와 채(蔡)나라 사이의 들에서는이레 동안이나 끼니를 굶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기도 했습니다."사금은 잠깐 뜸을 들였다가 본론으로 들어갔다."물길을 가기 위해서는 배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고,육지를 가기 위해서는 수레를 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물길을 가야 할 배를 육지에서 밀고 가려고 한다면 한평생이 걸려도 얼마 가지 못할 것입니다.그런데 옛날과 이제의 차이는 물과 육지의 차이와 다름이 없고 주(周)나라와 노나라의 차이는배와 수레의 차이가 아닙니까.이제 주나라의 옛날 道를 오늘의 노나라에서 행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배를 육지에서미는 것과 같아서 '애는 쓰나 공은 없고(勞而無功)' 또 그 몸에도 반드시 화가 미칠 것입니다.당신 선생은 아직도 저 무한한 변전(變轉), 곧 끝없이 변동하는 道를 모르는 사람입니다.그러니 안타깝지만 당신 선생은 곤란을 당할 것입니다."
    daet24 2026-08-24 故事 / 成語
  • 내우외환(內憂外患) 內:안 내. 憂:근심 우. 外:바깥 외. 患:근심 환 안의 근심과 밖의 재난. 곧 근심·걱정 속에 사는 것을 뜻함송(宋)나라에 환원이라는 대부(大夫)가 있었다. 그는 지성을 다해 진(晉)과 초(楚)를 설득하여기원전 579년에 송나라의 서문 밖에서 양국의 대표자가 맹약을 조인케 하였다.그 맹약의 주된 내용은 서로 침범하지 않을 것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환란이 있을 때엔 서로 도우며 복종하지 않은 나라가 있을 때에는 두 나라가 연합하여공벌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남북을 대표하는 두 나라가 평화를 유지함으로써 천하의소란을 가라앉히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맹약이 깨어진 것은 3년이 지나서였다. 초나라가 정나라를 침략함으로써 맹약은 깨어지고이듬해인 575년에는 진의 영공과 초의 공왕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언릉이라는 곳에서 대치했다.이 싸움에서 초나라의 공왕은 눈에 화살을 맞고 패주하여 초나라의 기세가 크게 꺾이는비운을 맞이했다.그런데 이보다 앞서 낙서(樂書)라는 이는 진나라에 항거하는 정나라를 치기 위해 동원령을내렸었다. 이때 초나라와 싸울 것을 주장하자 범문자가 반대했다."제후로 있는 자가 반란하면 이를 토벌하여야 함이 마땅한 것이지 그를 돕게 되면 나라가혼란해지는 것이요."낙서가 말했다."성인이라면 밖으로의 재난을 견딜 수 있겠지만, 우리는 밖으로의 재난이 없으면반드시 안으로 우환이 있을 것이요. 그러니 그것을 어찌 견디겠소."내우외환(內憂外患)은 이렇게 유래되었다.
    daet24 2026-08-24 故事 / 成語
  • 노마지지(老馬之智)老:늙을 로. 馬:말 마. 之:어조사 지. 智:지혜 지.늙은 말의 지혜란 뜻으로,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저마다 장기나 장점을 지니고 있음. 춘추 시대, 오패(五 )의 한 사람이었던 제(齊)나라 환공(桓公:재위 B.C.685∼643) 때의 일이다.어느 해 봄, 환공은 명재상 관중(管仲:?∼B.C.645)과 대부 습붕(鈒朋)을 데리고고죽국[孤竹國:하북성(河北省) 내]을 정벌하러 나섰다.그런데 전쟁이 의외로 길어지는 바람에 그 해 겨울에야 끝이 났다.그래서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귀국하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전군(全軍)이 진퇴 양난(進退兩難)에 빠져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말했다."이런 때 '늙은 말의 지혜[老馬之智]'가 필요하다."즉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놓았다.그리고 전군이 그 뒤를 따라 행군한 지 얼마 안 되어 큰길이 나타났다.한번은 산길을 행군하다가 식수가 떨어져 전군이 갈증에 시달렸다.그러자 이번에는 습붕이 말했다."개미란 원래 여름엔 산 북쪽에 집을 짓지만 겨울엔 산 남쪽 양지 바른 곳에 집을 짓고 산다.흙이 한 치[一寸]쯤 쌓인 개미집이 있으면 그 땅 속 일곱 자쯤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이다."군사들이 산을 뒤져 개미집을 찾은 다음 그곳을 파 내려가자 과연 샘물이 솟아났다.이 이야기에 이어 한비자(韓非子:韓非, ?∼B.C.233)는그의 저서《한비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관중의 총명과 습붕의 지혜로도 모르는 것은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그러나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어리석음에도 성현의지혜를 스승으로 삼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 아닌가." [주] '노마지지'란 여기서 나온 말인데 요즈음에도'경험을 쌓은 사람이 갖춘 지혜'란 뜻으로 흔히 쓰이고 있음.[유사어]老馬識途(노마식도:늙은 말이 길을 한다)
    daet24 2026-08-24 故事 / 成語
  • 內助之功(내조지공) 內:안 내, 助:도울 조, 之:어조사 지, 力:힘 력안에서 돕는 공. 아내가 가정에서 남편이 바깥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요즘은 남편이 밖에서 충분한 활동을 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아내가 집밖에서 뒷받침해 준다는 뜻으로 쓰인다.曹操(조조)가 魏(위)나라 武帝(무제)가 되자 후계 문제로 한동안 고민했다.맏아들인 曹丕(조비)로 할 것인가, 아니면 그 아우인 똑똑하고 문장이 뛰어난曹植(조식)으로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결국 조비가 황태자로 정해졌는데 조비가 황태자가 된 데에는 뒤에 황후가 된 郭(곽)씨의도움이 컸다. 조식이 형인 조비보다 똑똑한데다 조조가 조식을 偏愛(편애)했기 때문에곽씨가 여러가지 방책을 썼다는 것이다.조조가 무제로 등극했을 때 東宮(동궁)으로 들어온 곽씨는 君(군)의 長官(장관)인郭永(곽영)의 딸이었다. 곽씨는 남달리 영특해서 곽영이 "내 딸은 여자중의 왕이다"고말해 일찍부터 여왕으로 불렸다고 한다.文帝(문제)가 조비가 甄后(견후)를 폐하고 곽씨를 황후로 삼으려고 하자 中郞(중랑)인棧潛(잔잠)이 상소를 올려 말렸다."옛날의 제왕이 세상을 잘 다스린 것은 재상과 같이 정사를 공식적으로 보좌한사람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안에서 아내의 도움(內助之功)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잔잠은 이어 곽씨를 황후로 세우는 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누르는 것이어서질서를 어지럽히게 되어 나라가 어려워지는 원인이 될 것이라고 간했지만 문제는 듣지 않았다.황후가 된 곽씨는 뒤에 明帝(명제)가 된 曹叡(조예)를 낳은 견후를 모함하여 죽였다.
    daet24 2026-08-24 故事 / 成語
  • 낭중지추(囊中之錐)囊:주머니 낭. 中:가운데 중. 之:갈 지(…의). 錐:송곳 추.주머니 속의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남의 눈에 드러남의 비유 전국 시대 말엽,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은 동생이자 재상인평원군(平原君:趙勝)을 초(楚)나라에 보내어 구원군을 청하기로 했다.문무의 덕을 겸비한 20명의 수행원이 필요한 평원군은 그의 3000여 식객(食客) 중에서19명은 쉽게 뽑았으나 나머지 한 사람을 뽑지 못해 고심하고 있었다.이 때 모수(毛遂)라는 식객이 자천(毛遂自薦)하고 나섰다."나리,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평원군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그대는 내 집에 온 지 얼마나 되었소?""이제 3년이 됩니다.""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囊中之錐]' 끝이 밖으로나오듯이 남의 눈에 드러나는 법이오. 그런데 내 집에 온 지 3년이나 되었다는그대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이름이 드러난 적이 없지 않소?""그건 나리께서 이제까지 저를 단 한 번도 주머니 속에 넣어주시지 않았기 때문이죠.하지만 이번에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시기만 한다면 송곳의 끝뿐 아니라 자루[柄]까지드러내 보이겠습니다."이 재치 있는 답변에 만족한 평원군은 모수를 수행원으로 뽑았다.초나라에 도착한 평원군은 난항을 거듭했지만,모수가 활약한 덕분에 국빈(國賓)으로 환대받으면서 구원군도 쉽게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주]평원군:전국시대 조나라의 공자. 본명은 조승(趙勝). 재상을 지냄.식객 수천 명을 부양하고, 제나라의 맹상군(孟嘗君)·초나라의 춘신군(春申君)·위나라의 신릉군(信陵君)과 함께 전국(全國)의 사군(四君)이라 일컬어짐
    daet24 2026-08-24 故事 / 成語
  • 狼子野心(낭자야심) 狼:이리 랑, 子:아들 자, 野:들 야, 心:마음 심 늑대 새끼는 작아도 흉포한 성질이 있어 길들이기가 어렵다.흉포한 사람의 마음은 교화하기 힘들다 춘추 시대 楚(초)나라의 鬪子文(투자문)은 若敖(약오)씨의 후예다.전설에 따르면 그는 태어난 직후 들에 버려졌는데 호랑이가 주워다가 길렀다고 한다.나중에 그를 발견한 사람이 "이 아이에게는 복이 있다"며 데리고 갔다.투자문은 뒤에 초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사람 됨됨이가 공정하며, 법 집행도 엄정 공명했다.한 번은 그의 친척이 법을 어긴 일이 있었으나 담당 관원이 체면을 생각하여 그를 석방했다.그것을 안 투자문은 즉시 담당 관원에게 말했다.  "국가가 법률을 만들고 담당 기관을 설치했는데, 법 집행자가 법을 무시하고 죄인을 석방하면안 된다. 비록 나의 일가붙이일지라도." 그리고 그를 넘겨 주어, 공평한 심리를 하든가 아니면 자해를 시키든가 하라고 명하여백성의 비난을 피하려고 했다. 그래서 담당 관원은 그 사람을 법에 따라 처벌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초나라의 成王(성왕)은 즉시 그의 집을 찾아가서 경의 표했다.초나라 백성들도 그 말을 듣고 저마다 말했다."모두가 투자문 같다면, 초나라가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무엇을 걱정하랴."  투자문의 아우로 병부상서 子良(자량)의 아들 越椒(월초)를 보러 간 투자문이 말했다."저 애를 어서 죽여라. 자라서 틀림없이 우리 약오씨에 화를 가져 올 것이다."狼子野心(낭자야심)"대로다. 그러나 자량은 아들을 죽이지 않았다.걱정한 자문은 죽는 자리에서 가족에게 유언했다."월초가 권력을 장악하거든 도망쳐라." 그는 장래에 월초가 일족을 수중에 넣고 전멸시킬것을 염려했다. 그가 죽은 뒤에 아들 般(반)이 재상이 되고,월초도 아버지의 대신하여 병부상서가 되었다.기원전 626년에 성왕의 아들 商臣(상신)은 부왕을 시해하고 왕이 되어 穆王(목왕)이라 칭했다.반은 알고 있었으나 발설하지 않았다. 월초는 이 기회에 재상 자리를 빼앗으려고 목왕에게반을 중상했다. 목왕은 월초와 爲賈(위가)의 말을 믿고, 반을 죽이고 월초를 재상에,위가를 병부상서에 각각 발탁했다.월초는 20년간 재상직을 보았다. 그 사이에 목왕은 죽고 莊王(장왕)이 즉위했다.그는 장왕을 내심 경멸하면서도 왕이 위가를 중용하여 그의 권력을 삭감하려는 것을 원망하여모반을 꾀하였다. 월초는 장왕이 외국으로 원정 나간 틈을 타 약오씨 일족을 이끌고 위가를습격하여 그를 체포하여 죽여 버렸다. 그것을 안 장왕은 투씨의 역대 공적을 생각하여월초에게 사죄시켜 사태를 수숩하려고 월초의 아들을 인질로 내놓으라고 제의했으나그는 거부했다. 다음 해 7월경, 월초와 장왕 양군이 교전하여 장왕은 약오씨의 일족을 몰살시켜 버렸다.월초의 "狼子野心"은 마침내 여기까지 발전하여 투자문이 염려한 대로 약오씨에게큰 재난을 가져다 주었다.
    daet24 2026-08-24 故事 / 成語
  • 남풍불경(南風不競)南:남녘 남. 風:바람 풍. 不:아닐 불. 競:굳셀 경남방의 풍악은 굳세지 않다는 말로, 어떤 나라에서 불려지는 노래나 풍속을 보면 대체로기세나 힘이 있고 없음을 알 수 있다는 것임춘추시대 말 주영왕 17년, 노양공 18년 때의 일이다.정나라의 자공이라는 야심가가 살고 있었는데,그는 자신의 출세에 방해가 되는 대부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독차지 하려고 혈안이 되었다.그 당시 제후들은 진나라를 맹주로 하여 포학한 제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포위망을 좁혀가고 있었다. 그런데 자공은 이 틈을 타서 남쪽 지방의 초나라 군대를 선동하여 자기의출세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대부들을 제거하려고 계획 했다.그는 초나라에서 영윤의 벼슬을 하고 있는 자경에게 사자를 파견하여 자신의 뜻을 전했지만,응낙을 받지 못했다.그런데 이 일을 알게 된 강왕이 자경에게 사람을 보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나는 사직을 받든지 5년이 되었으나 군대를 낸 일이 없소.백성들은 내가 안일만을 탐내어 선군의 사업을 잊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소.당신은 이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이말을 들은 자경은 깊이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국왕의 사자에게 점잖게 이렇게 말했다."임금께서는 제가 안일만을 생각한다고 보십니까? 저는 나라의 이로움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현재 제후들의 마음은 진나라로 향하고 있습니다만,한번 나서 보십시오. 잘되면 하시고,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군대를 거두십시오. 그러면 임금께서는 손해보는 일도 없을 것이고,부끄러울 것도 없습니다."자경은 군대를 이끌고 정나라를 공격했다.그 당시 정나라에서 내노라하는 인물들은 모두 제나라 토벌에 참가하고,자공, 자전, 자서만이 남아서 지키고 있었다.그러나 일찍이 자공의 야심을 눈치채고 있던 자전과 자서는 성을 더욱 굳게 지켰다.그래서 자경이 이끄는 군대는 단지 이틀간의 싸움을 끝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이들이 퇴각하던 때가 추운 겨울인데다가 마침 어치산을 지날 때 큰 비까지 내려군대는 거의 전멸 상태에 이르렀다. 초나라 군대가 출동했다는 소문은 진나라에도 퍼졌다.그러나 진나라의 악관으로 있던 사광이 말했다."대단치 않습니다. 저는 때때로 남방의 노래와 북방의 노래를 부르곤 합니다.그런데 남방의 노랫가락은 미약하여 생기라고는 조금도 없습니다.남풍은 강하지 않고 죽는 소리가 많습니다. 초나라 군대는 반드시 패할 것입 니다."역술가 동숙도 이렇게 말했다. "한해의 운세와 달의 운세가 대체적으로 서북쪽에 있습니다.남쪽 군대는 때를 만나지 못했으므로 반드시 실패할 것입니다."정치가 숙향 역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일은 임금의 덕에 달려 있습니다."이들은 한결같이 남쪽 군대가 실패할 것임을 예언했고 그 예언은 적중했다.
    daet24 2026-08-24 故事 / 成語
  • 藍田生玉(남전생옥)藍:쪽 람, 田:밭 전, 生:날 생, 玉:구슬 옥남전은 예로부터 아름다운 옥이 산출하듯이 명문에서 훌륭한 인물이 나온다는 뜻 남전(藍田)은 산사성에 있는 산 이름으로 옥의 명산지.남전이 예로부터 명옥(名玉)을 산출하듯 명문에서 훌륭한 인물이 나온다는 뜻이다.제갈량(諸葛亮)은 촉(蜀)나라 유비(劉備)를 섬겼지만 그의 형 근(瑾)은 오(吳)나라손권(孫權)의 신임을 받는 신하였다. 제갈근에게는 각(恪)이라는 총명한 아들이 있었는데각이 여섯 살때 어느날 아버지를 따라 조정의 연회에 참석했다.각의 비상한 재주를 들어서 잘 알고 있는 손권은 각에게 장난을 걸고 싶어졌다.사람을 시켜 당나귀 한마리를 끌어오게 하고는 그 얼굴에다 '제갈근'이라고 썼다.제갈근이 당나귀를 닮았기 때문이었다.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지만 각은 담담한 표정으로 손권의 붓을 빌리더니 '의 당나귀'라고덧붙여 썼다. '제갈근의 당나귀'가 되지 않았는가.모두 그 기지에 감탄했고 손권은 당나귀를 각에게 주었다.또 어느날 손권이 각에게 물었다."너의 아버지와 삼촌 중 누가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느냐?"각의 대답"훌륭한 군주를 섬기는 아버지가 더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이러니 손권의 입이 벌어질 수 밖에.또 한번은 유비의 사자(使者)가 오나라에 왔을 때 손권이 사자에게 각이 승마를 좋아하니말 한필을 보내주도록 삼촌인 제갈량에게 전해달라고 하자그 말을 들은 각이 손권에게 고맙다고 말했다."좋아하기에는 너무 일러. 말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촉은 오나라의 마굿간이죠. 전하의 명령인데 반드시 명마를 보내줄 겁니다."재치있게 받아 넘기는 각에게 감탄하면서 손권은 그의 아버지에게 말했다."남전에서 옥이 난다는 말이 진실로 거짓이 아니로다(藍田生玉 眞不虛也)"훌륭한 아버지이기에 훌륭한 아들이 난다는 말이다. ※《史記》에 이와 비슷한 뜻으로"장문필유장 상문필유상(將門必有將 相門必有相)"이 있다.훌륭한 장군이나 재상 밑에는 자연히 훌륭한 사람이 모여든다는 뜻이다.
    daet24 2026-08-24 故事 / 成語
  • 남원북철(南轅北轍) 南:남녘 남. 轅:끌채 원. 北:북녘 북. 轍:바퀴자국 철수레의 긴 채는 남쪽으로 가고 바퀴는 북쪽으로 간다는 말로, 행동이 마음과 일치하지 않음. 전국시대 위나라 왕이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때마침 여행을 하고 있던 신하 계량이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그는 왕을 뵙고 말했다."저는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북쪽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그래서 저는 '초나라로 간다면서 북쪽으로 가는 까닭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그는 '제 말은 아주 잘 달립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그래서 저는 '말이 잘 달려도 이쪽은 초나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라고 하자그 사람은 '나는 돈을 넉넉히 가지고 있고,마부가 마차를 모는 기술은 훌륭합니다.'라고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왕께서도 생각해 보십시오.그사람의 행동은 초나라와 더욱 멀어지는 것이 아닙니까?"계량은 말을 잠시 멈추더니 다시 말했다."왕께서는 항상 패왕이 되어 천하가 복종하도록 하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그렇지만 지금 왕께서는 나라가 조금 큰 것만을 믿고 한단을 공격하려고 하는데,이렇게 하면 왕의 영토와 명성은 떨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왕의 목표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이것은 제가 만난 사람처럼 초나라로 간다고 하면서마차를 북쪽으로 몰고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무력이 아니고 인덕으로 천하를 재패 할 것을 말한 것이다.
    daet24 2026-08-24 故事 / 成語
  • 南橘北枳(남귤북지)남녘 남, 귤 귤, 북녘 북, 탱자 지회수의 남쪽인 회남의 귤나무를 회수의 북쪽인 회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로 변해버린다.처지가 달라짐에 따라 사람의 기질도 변한다는 뜻춘추시대 齊(제)나라에 안영이란 유명한 재상이 있었다.어느 해 안영이 사신으로 楚(초)나라에 가게 되었다.평소 안영이 비상한 인물이라는 소문을 듣고 있던 초나라 靈王(영왕)은 이 기회에그를 시험해 볼 욕심이 생겼다.그런에 안영은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외모는 볼품이 없고 키도 아주 작았다. 영왕이 안영에게 물었다."제나라에는 인재가 별로 없는 모양이지요. 당신같은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는 걸 보면."안영의 보잘 것 없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비웃는 말이었다.그러나 안영은 태연하게 대답했다."우리 제나라에는 한가지 원칙을 세워두고 있죠.큰나라에는 큰 사람을,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보내는 것이지요.저는 작은 사람중에서도 가장 작기 때문에 이렇게 초나라에 오게 된 것입니다."영왕이 한방 얻어 맞은 꼴이 되었는데 마침 그때 捕吏(포리)가 죄수를 끌고 지나갔다.영왕이 물었다."그 죄수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제나라 사람인데 절도 죄인입니다."포리의 대답을 듣고 초왕이 안영에게 물었다."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 합니까?""淮南(회남)쪽의 귤을 淮北(회북)땅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어버립니다(南橘北枳).제나라 사람은 도둑질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라는데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한 것을 보면초나라 풍토 때문인 것 같습니다."연거푸 두 방을  얻어 맞은 영왕은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고분고분하고 얌전하던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면 지독한 시어머니가 된다고 했다.개인 아닌 집단도 처지가 달라지면 속성이 변한다.
    daet24 2026-08-24 故事 / 成語
  • 낙정하석(落井下石)落:떨어질 락. 井:우물 정. 下:아래 하. 石:돌 석우물 아래에 돌을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이 재앙을 당하면 도와주기는 커녕오히려 더 큰 재앙이 닥치도록 하는 것을 말함이 성어는 당송 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가 친구 유종원의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묘지명 가운데 나온다. "아! 선비는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비로소 그 지조를 알게 된다.지금 어떤 사람들은 컴컴한 골목에 살면서 서로 사랑하고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놀면서 즐겁게 웃으며, 자기의 심장이라도 꺼내 줄 것처럼 친구라고 칭하며,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죽음과 삶을 함께할 것이라고 아주 간절하게 말한다.그러나 머리털만큼 이나 작은 이익이라도 있는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 눈을 부릅뜨고사람을 구분할 줄도 모른다. 당신이 만일 다른 사람에 의해 함정에 빠지게 된다면,당신을 구해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돌을 들어 당신에게 던지는 그런 사람이 매우 많다.이처럼 개화되지 않아 금수와 같은 사람들은 어째서 직접 가서 일을 하지 않으면서자기들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는가?"한유는 유종원이 소인배들의 모함으로 기개를 펼치지 못하고 저승으로 먼저 간 것을애도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지었다. 유종원은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고 문장을 잘 쓰기로명성이 자자했던 인물이다. 그는 순종이 즉위한 뒤 왕숙문 등이 주도하는 정치 개혁에적극 가담하였으나, 혁신 정치가 실패하여 귀양살이를 하다가 47세에 세상을 떠났다.그는 고문 운동을 영도한 인물로서 '도를 밝힌다'는 것을 문학관의 강령으로 삼고저술 작업을 했다. 아울러 그의 정치 활동에 있어서도 '도'에 부합되는 행동을 하려고노력했다. 만일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튼튼한 밧줄을 내려 주기는 커녕 오히려 돌을 던진다면어떻게 되겠는가? 우물에 빠진 사람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어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지만 돌을 던진다면 그는 생사의 기로에서죽음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친구나 주위 사람들이 평온 하고안락한 생활을 할 때는 물론이고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 때,더욱 구렁 속으로 밀어 넣는 행동을 결코 해서는 안되며 그동안 쌓아 온신뢰 속에서 온정의 손길을 뻗어야 한다.
    daet24 2026-08-24 故事 / 成語
  • 洛陽紙貴 (낙양지귀)洛:물 이름 락. 陽:볕 양. 紙:종이 지. 貴:귀할 귀.'낙양의 지가를 올리다'하는 뜻. 곧 저서가 호평을 받아 베스트 셀러가 됨 진(晉:265∼316)나라 시대, 제(齊)나라의 도읍 임치(臨淄) 출신의 시인에좌사(左思)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선비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아버지인 좌옹도 하급관리에서 몸을 일으켜, 그의 학문이 팔려서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로 발탁된 사람이다.그는 뛰어난 문재(文才)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용모가 추할 뿐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더듬었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접촉을 싫어하고,집에 들어박혀 창작에 열중하며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이렇게 하여 1년 동안 걸려서 제나라의 도읍이었던 임치의 모습을 운문(韻文)으로엮은 제도지부(齊都之賦)를 쓰고, 이어서 삼국시대 촉한의 도읍인 성도(成都)와오나라의 도읍인 건업(建業)과 위나라의 도읍인 업을 노래한 삼도지부(三都之賦)을지었다.삼도지부의 평판은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나의 작품은 반고(班固)의 이도지부(二都之賦)나 장형(張衡)의 이경지부(二京之賦)에 비하여 결코 월등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자부하고 있던 그는자기의 작품을 끌어안고 황보밀의 문을 두드렸다. 황보밀은 무제의 자주 있었던 벼슬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농사를 지으면서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던 재야의 석학(碩學)으로현안선생(玄晏先生)이라고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다.황보밀은 그 글을 한 번 읽고서, "이것은 멋진 글이군!"하고서,그 자리에서 서문을 써 주었다. 다시 장재(張載)가 위도지부(魏都之賦)에,중서랑인 유달이 오도지부(吳都之賦)와 촉도지부(蜀都之賦)에 주를 다는 등마음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그 진가를 인정받게 되었거니와그 이름을 결정한 것은 사공(司空) 벼슬에 있는 장화(張華)가 절찬하는 말이었다."이 작품은 정말로 반고나 장형의 작품과 어깨를 겨룰 만하다.다 읽고 나면 독자로 하여금 여운이 요요하고 날이 갈수록다시 감명을 새롭게 함을 깨닫게 하는 바가 있다."이 말이 전해지자《삼도부》는 당장 낙양의 화제작이 되었고,고관대작은 물론 귀족 환관 문인 부호들이 그것을 다투어 베껴 썼다.그 바람에 '낙양의 종이값이 올랐다[洛陽紙價貴]'고 한다.
    daet24 2026-08-24 故事 / 成語